수집과 사진이 만들어낸 해태(獬豸)의 초상(肖像) - 김동현(전시기획·비평) 황진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해태(獬豸)들은 우리가 ‘해태’하면 흔히 떠올리는 거대하거나 웅장한, 그런 기념비적인 모습들이 아니다. 그보다는 크기도 작고, 얼굴 표현과 형태도 다양한, 친근감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지는, 황진 작가가 수집해온 해태들이다. 그가 십 년 간 모아온 1천(千)여 점의 해태들은 그의 집 마당 곳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고 수집에 대한 일종의 기록으로 찍어온 해태 사진들 역시 수천 장에 이른다. 햇빛이 강해지기 전, 새벽이나 혹은 이른 아침, 작가는 이들 해태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향한다. 그리고 이렇게 그의 해태들은 기록된다. 때로는 얼굴만 때로는 전신으로, 때로는 주변의 나무와 풀 속에서 홀연히 홀로, 때로는 마당에 뛰어 노니는 진돗개들과 함께, 해와 바람과 습도 등 주어지는 날씨와 찍혀지는 각도에 따라 변화하면서. 오래 전, 안녕(安寧)과 벽사(辟邪)를 위해 제작되어 위용(威容)을 과시했건만, 자연의 풍파와 인간 세상의 시간은 그 불거져 나왔던 큰 눈을 둥글게, 그 날카로웠던 이빨을 무디게 만들어, 험악했던 인상은 간데없이 얼굴 가득한 부드럽고 장난스러운 미소만이 남았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며 인간을 돕는다고 믿어졌던 신수(神獸), 해태. 오늘날 우리의 환경은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했고, 신과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은 어느덧 과학과 이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人間事)는 변함없이 혼란스럽기에, 사람들은 아직도 그 오랜 믿음 즉 해태가 지켜 주리라는 바람은 버리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이 남아있는 한 해태는 계속 인간 곁에 함께 할 것이다. 도심이나 자연 속에서, 나뭇잎이나 풀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속에서, 혹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로. |